2004-05-15

풀밭 위의 점심 식사


Edouard Manet Posted by Hello
앞에 루브르 박물관 내 피라미드 건축과 관련된 내용도 있었지만 프랑스는 문화 예술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열려져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광고 등에도 종종 사용되어 나같은 미맹도 익히 아는 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라는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1863년 5월 15일 '낙선자 전시회'란 것을 통해서 겨우 일반인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낙선의 정확한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 미술사에서는 이 사건을 전후로 한 일련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으로 인한 전통의 단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미술가의 위상에 대한 변화가 있었다. 과거 화가는 후원자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렸고 이로 인한 지위의 안정감이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화가들은 이런 안정감을 상실하게 되고 선택의 무제한 영역을 갖게 됐다. 이제 미술은 당시의 '부르주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충격 요법 오락이 됐다. 다시 말해 미술이 개성을 표현하는 완벽한 수단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파와 개혁(?)파가 양분하여 존재하게 된다. 지금이야 이런 개혁파를 미술사적으로 가치있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관전파가 주류였다... ' -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세계 - 류동현(월간미술 기자)' 중에서


아마 당시 살롱 심사관들은 위에 인용한 글에서의 그 관전파들이 다수였던 듯 하고 마네나 세잔, 모네 등의 새로운 조류를 쉬이 수용할 수 없었던 듯 하다. 하지만 이 신진 세력의 저항과 언론의 개입은 쿠테라로 등극한 나폴레옹 3세까지 이 문제에 관여하게끔 끌어내게 되어 이로 인해 더욱더 뭇 세인의 주목을 끌어낼 수 있게 된다. 결국 이 새로운 파고에 ( 미술사에 있어서의 ) 보수파들은 전복되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이 신진 세력들은 '인상파'라는 기치를 높이 세우게 된다. 이 중심에 바로 마네가 위치하고 있단다.

음 역시나 역사를 알면 이렇듯 그림도 달리 볼 수 있는 것을 ... ^^; 아참 ... 이 그림은 현재 Orsay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장에서 디카로 어설프게 찍다보니 그림이 약간 찌그러진 듯도 싶고 ...

2004-05-14

서울 그리고 파리


Louvre Posted by Hello

“모든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파리에 남겨 놓을 책임을 갖고 있다.” - 자크 시락 파리 시장



'세계의 건축가들이 프랑스 파리를 주목하던 미테랑 대통령 시절, 루브르박물관에 유리 피라밋을 만들겠다는 건축가의 계획안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지어졌다. 한국에서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질문에 대답을 우선 했어야 할 것이다. 피라밋은 이집트의 것이 아니냐고, 왕이 지내던 전통공간에 첨단유리구조물이 웬 말이냐고, 그 유리는 어떻게 닦느냐고, 유리가 깨지면 어떻게 갈아 끼우느냐고. 가장 투명한 구조물을 원하는 건축가의 의도에 맞춰 유리회사에서는 역사상 가장 투명도가 높은 유리를 개발해냈다. 엔지니어는 유리를 끼우는 방식에서도 이전의 것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냈다. 이 괴상한 구조물의 유리를 닦기 위한 로보트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개발된 새 재료와 기술은 열심히 외국에서 팔려나가고 있다 ...'

- 서현 교수의 시청 앞 광장 주장 기고문 중에서



시청 앞 광장 조성 과정에서 드러난 졸속 전시 행정에 대해 시청 앞 광장 조성사업 현상설계 당선자인 서현 교수의 주장 전문이 인터넷에 올랐다. 한 족의 주장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주장이 사실이라면 ( 이명박의 스타일로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인다 ) 시청 앞 지날 때마다 혈압이 안 높아질 수 없게 생겼다. 덴당 ... 아 그러길래 이문옥샘 뽑으랄 때 뽑지들 ... 아 덴당

2004-05-13

Lion Monument


Lion Monument  Posted by Hello

마크 트웨인이 'the saddest and most moving piece of rock in the world' 이라고 했다는 Luzern의 '빈사의 사자상'.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보호하려고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하는데 그래서 사자 머리 맡에 있는 방패에는 브루봉 왕조의 표시인 백합 표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용병.

상황은 극도로 불리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투항한들 남을 것이라고는 씻을 수 없는 불명예와 구차한 목숨 밖에 없을 것이다 ( 계약을 파기한 용병을 누가 고용할 것인가! ) 선택할 여지가 없다. 부패한 브르봉 왕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자존심과 신의를 지켜내기 위해 밀려드는 혁명군들 힘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베어야만 한다.


추악한 전쟁의 이미지는 잠시일 뿐이다. 자유와 평화라는 신성한 깃발을 들고 이제 다시 용병들이 투입될 것이고 그들 중 또다른 영웅이 태어날 것이다. 그들이 정작 그토록 헌신적으로 수호하려는 것이 탐욕스런 왕족들이던, 석유 자본을 등에 업은 부시 정권이던 그건 중요치 않다.

누가 알겠는가.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저 사자상처럼 조각으로 미화되어 되살아나고 그것이 순결한 영웅담이 되어 숱한 관광객들의 추억과 그들의 사진을 통해 이런 식으로 계속 재생되어 퍼져나가게 될지.

2004-05-12

이봐 아가씨 시간 좀 있어?


Orsay Posted by Hello

미술의 문외한인 내가 그 전 30여년간 본 것보다 많은 작품을 나흘 내내 보는 것은 사실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다시 기회가 된다면 역시나 주저하지 않고 Orsay 를 찾아갈거다.

전혀 모르는 작품을 단지 Orsay 에 있었다는 단서만 가지고 끈질기게 추적했다. Jules Dalou의 'Forgeron'이라는 작품이라 한다 - insecula . 그런데 'Forgeron'은 또 뭔 소린가 ...

또 한참을 찾다가 엉뚱한 곳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Chant de forgeron - 대장장이의 노래'란 프랑스 가곡 제목을 보고.

아 소스포지! 그러고 보면 forge 가 대장간이지 ^^

거친 노동으로 단련된 강인한 대장장이, 하체는 무너질듯 헝클어져 있고 끝내 쓰러질듯한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어딘가에 힘겹게 기대서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무기만은 당당하게 어깨 위에 걸친채 우리를 주시하는 그의 시선에서 무한한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004-05-11

월드컵 경기장 구경 가기 전날


Heidelberg Posted by Hello

내일은 단체로 월드컵 경기장에 축구 경기 관람을 간다.

하이델베르그 기차역. ( 사진 속 건물은 HBF는 아니다. HBF 건너편 건물 앞 기린 조형물 귀여워서 찍어둔 걸거다 ) 아마 월드컵 경기 가장 길게 본, 아니 거의 유일하게 맘먹고 본( 그래 봤자 전반전만 봤지만... ) 곳이었다.


내게 2002 월드컵은 그저 먼 이국 땅 낯선 대합실 바닥에서 잠깐 본 경기와 개막전, 프랑스 꺾은 세네갈 친구들이 요란하게 파리 시내 경적 울리면서 행진하던 유쾌한 모습 정도로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그래도 상암 경기장은 한 번 구경해보고 싶었다 ^^; )

Heidelberg 얘기 나온 김에 하나 더


Heidelberg Posted by Hello

Heidelberg 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라면 역시나 Karl Teodor 왕이 복구하려고 애썼던 산 중턱의 저 성이다. 앞에 보이는 다리는 Alte Br?cke (구다리) 이고 여길 건너 앞에 나무 보이는 쪽으로 오면 헤겔, 하이데거 등의 철학자가 산책했다는 Philosophenweg 로 접어들 수 있다.

짧은 한나절 여정으로 돌아본 곳이라서 그다지 별다른 추억 없었던 곳이었는데 사진 따라가며 산책하다 보니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군 ^^;

2004-05-10

여행자의 시선


Stockholm Posted by Hello

TV 를 보니 수잔 브링크의 근황이 나온다. 아 그녀가 입양되었던 곳이 스웨덴이었구나.

그저 지나가는 여행객에는 평화롭고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곳이지만 그 어디에서나 삶은 그다지 온전치 못한 법인가보다.

마침 스톡홀름시 생긴지 750주년 기념 축제 기간 중이어서 막연히 상상했었던 북구의 건조함, 삭만함과는 달리 거리는 온통 흥겨운 인파로 가득 차있었다. 수많은 기구들이 거리 곳곳에서 떠올라 하늘을 채웠고...


p. s : 건너편 큰 배가 하룻밤 묵었던 호스텔. 여기서 제공된 아침이 여행 기간 중 호스텔에서 제공되었던 식사 중 가장 훌륭했었던 것 같다 ( 빈곤한 우리의 가방은 당연히 규정 몰래 훔쳐넣은 빵으로 든든해졌었고 ^^; ) 아 그리고 호스텔 앞 노점에서 사먹었던 맥주. 아직까지도 그 맥주만큼 맛있는 맥주 먹어보지 못했다. 아쉽게도 이름은 기억 못하고 있지만.

2004-05-09

50 Tulpen에 6유로


Tulip Posted by Hello

Michael Pollan의 [The Botany of Desire: A Plant's-Eye View of the World] 를 보면 튤립 투기에 관한 기묘한 유럽 역사를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여기, 네덜란드가 있었다.

암스텔담하면 위 책에서 튤립말고 또 다뤄졌었던 마리화나 얘기도 빼먹어선 안되겠지만 ...

마리화나에 찌든 좁은 뒷골목과 열정적인 튤립들 ... 극단의 욕망들이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던 도시.

오늘처럼 무척이나 우중충한 날이었지


RHEINPosted by Hello

비가 쉴 새없이 내린다. 쾰른의 새벽은 지금보다 좀 더 침울했다. 기차 여행의 피곤함과 약간의 허기짐, 그리고 역 앞 거대한 까마귀처럼 웅크리고 있는 암울한 쾰른 성당. 비가 간간히 내렸고 우린 쾰른 성당을 지나 라인 강변을 거닐었다.